「생활의 달인」, 『초연과 구원』,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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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 도서출판 빡빡 Date22-11-28 00:00 Hit27 Comment0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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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에서 그림자를 마주친 일이 있냐는 당신의 질문에
나는 당신이 나의 그림자임을 깨닫습니다
그림자를 마주친다는 건 대체….
내가 말을 고르는 동안
당신을 언제까지고 기다리게 둘 수 없어
일단 무어라도 마시면서
천천히 얘기하지 않겠냐고 질문에 질문을 돌려줍니다
망설임 없이 항상 마시던 걸로 달라는 당신
나는 사과주스와 사과맛주스 사이에서 한참을 망설이다가
한 손에는 유리잔을 한 손에는 사과를 들고 돌아옵니다
당신은 조금 당황한 듯 여기는 원래 이런 식이냐고 묻고
나는 여기와 원래, 그리고 이런 식을 두고 하나하나 고민하다가
그렇다고, 다시, 그런 것 같다고 말을 흐립니다
미안하다는 말은
누구의 입에서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흐려지는 건
말 뿐만이 아닙니다
유리잔이 투명한 그림자를 드리웁니다
지는 해와 뜨는 달이 함께 만드는
두 개의 그림자 사이, 만질 수 없어 내버려 둡니다
화를 내지도 않고 슬퍼하지도 않고
여기에 원래 이렇게 있는
당신과 나는 어떻게 마주쳤습니까
당신도 비어있습니까?
그림자를 마주친다는 건 대체….
텅 빈 표정을 숨기려 고개를 숙이면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그늘이 지고
아직도 내가 대답을 미루고 있음을 깨닫습니다
마주친 일이 있으면 있는 거고 없으면 없는 건데
딱 잘라 말 할 수가 없습니다
둥근 사과는 서 있지도 누워있지도 않은 채
유리잔 옆에 그대로 사과인 채 있습니다
딱 잘라낸다면 칼같이 쪼개지겠지요
속을 훤히 보여주겠지요
자주 잠이 들고
가끔 꿈을 꾸었습니다
종종 일어나보면
사과가 말라가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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