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속의 기도 [신동욱 앵커의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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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 Date23-08-11 00:00 Hit36 Comment0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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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네 살, 다산 정약용이 규장각 교서로 일하며 노래한 스무 편 연작시의 아홉째 시입니다. 임금 정조의 총애가 깊어가면서 그를 겨눈 모함과 상소가 극성을 부리던 때였지요. 그럴수록 그는 가슴 후련해지는 순간들을 그리며 답답하고 우울한 일상을 뚫고 갈 힘을 내곤 했습니다.
'아스라한 절벽에 힘겹게 올라보니 구름 안개 겹겹이 발 아래를 덮었네. 해 질 녘 서풍 불어 일시에 천만 봉우리 드러나면 그 얼마나 좋을까'
올여름 우리가 힘겹게 지나고 있는 고난과 시련의 길이 다산의 곤한 처지를 닮았습니다.
장마, 폭염, 폭우는 어느 하나 그냥 지나가지 않았습니다. 때이른 폭염이 유월 중순부터 불줄기를 퍼붓더니 하순에 시작한 장맛비가 꼬박 한 달을 이어갔습니다. 그 소용돌이에 휩쓸려 애꿎은 생명들이 스러졌지요.
그리고 다시 폭염이 닥쳤습니다. 태양은 화가 하늘 끝까지 뻗쳤고, 온 나라가 화로에 들어앉았습니다. 짤막한 호우가 번갈아 쏟아지면서 습식 사우나 같은 밤이 잠자리를 들쑤셔놓았습니다. 비와 더위와 열대야가 긁어대는 불협화음 삼중주가 오늘 새벽까지 몸과 마음을 괴롭혔습니다.
속담에 '앞문에서 호랑이를 막는데 뒷문으로 승냥이가 들어온다'고 했지요.
그런데 올여름은 앞뒷문으로 호랑이와 승냥이가 한꺼번에 쳐들어와 으르렁대는 격입니다. 다들 그렇게 삼복을 지나느라 녹초가 됐습니다. '입술에 붙은 밥알도 무겁다'는 속담 그대로입니다.
그리고 삼복 더위 막바지 말복에 태풍이 들이닥쳤습니다. 한반도를 길게 가르며 광풍대우를 몰아치고 있습니다. 비는 한밤에도 은빛으로 빛나는 대나무, '은죽'처럼 내리꽂습니다.
'상금도 밖은 장대 같은 억수 비. 귓전에 맴도는 목놓은 소리. 상앗빛 채찍'
자연이 인간을 호되게 꾸짖는 이 채찍질은 온전히 피할 수는 없어도 늘 그랬듯 상처를 안으면서 또 뚫고 나아가겠지요. 그리고 다산의 노래처럼 성큼 가을이 다가서겠지요.
'길고 긴 찜통더위 퀴퀴한 냄새에 축 처져 하루하루 보내다가 문득 가을 하늘 맑고 드넓어 끝 간 데까지 한 점 구름 없으면 그 얼마나 좋을까'
그렇듯 태풍이 여름의 불길을 꺼트리고 떠나면 삼복 내내 지고 온 마음의 화가 씻은 듯 가시길바랍니다. 세 치 혀로 토해내는 갖은 요설과 마음을 후벼 파는 온갖 독설, 그 모든 아우성과 손가락질도 함께 잦아들기를 기다립니다.
8월 10일 앵커의 시선은 '태풍 속의 기도' 였습니다.
#태풍 #여름 #가을 \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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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19] 사실을 보고 진실을 말합니다.\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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